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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 꽃 진 자리 서러운 날엔

ccttjj 2019. 6. 30. 06:33

 

 

 

제천의 명소들은 스스로 슬픔을 치유한다. 고갯마루에 깃든 애달픈 전설은 국민 애창곡으로, 순교자의 붉은 피는 푸른 숲으로 부활하는 식이다. 눈앞이 환했던 자리마다 이별이 발생하는 봄날. 꽃 시절을 보내는 설움은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 신록의 숲길을 걷는 것으로 갈음할 일이다.

청풍호는 1985년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로 제천과 충주에 걸쳐 있다. 육지 속의 바다라 일컬어질 만큼 넓은 호수다.

청풍호는 1985년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로 제천과 충주에 걸쳐 있다. 육지 속의 바다라 일컬어질 만큼 넓은 호수다.

달력을 한 장 넘길 때마다 그 달에 해당하는 절기부터 짚어보곤 한다. 농군도 아니면서 식구와 친구 생일보다 먼저 태양의 운행 주기를 살피는 이유는 순전히 24절기의 명칭이 예뻐서다. 봄이 선다든가 개구리가 깨어난다든가 하는 말들. 시 구절처럼, 포춘 쿠키 속 행운의 메시지처럼 풀어지는 이름들이 좋아서다.

24절기 중 특히 설레는 이름은 봄철에 몰려 있다. 그중에서도 청명(淸明)과 곡우(穀雨)를 품은 4월이 으뜸이다. 청명은 그 이름을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맑고 밝아지는 듯하여, 곡우는 연푸른 햇차 맛이 떠돌아 좋다. 곡우 전후에 딴 찻잎으로 덖은 우전 때문이리라. 봄비는 자분자분, 참으로 곡진하게도 오신다. 백곡을 기름지게 할 단비다. 하지만 햇차처럼 순한 그 비에 꽃이 진다. 이 봄을 몇 번이나 더 볼까 탄식할 만큼 늙지도 않았건만 꽃을 보내는 마음은 갈수록 애틋함을 더한다. 이별에 관한 한 경험과 관록은 소용이 없다. 무뎌지기는커녕 더 첨예해진다.

제천의 걷기 좋은 길로 소문난 자드락길은 청풍호를 조망하며 걷는 산길이 일품이다. 저마다 특징을 지닌 7코스로 구성돼 있다.

제천의 걷기 좋은 길로 소문난 자드락길은 청풍호를 조망하며 걷는 산길이 일품이다. 저마다 특징을 지닌 7코스로 구성돼 있다.

위로가 필요한 시절, 제천 여행을 권하는 이유는 이곳이 울고 넘는 박달재와 초기 가톨릭 신자들의 은둔처와 수몰마을의 아픔이 깃든 땅이기 때문이다. 슬픔이 슬픔을 알아보고 어루만진다. 더욱이 제천은 조선시대 3대 약령시장으로 손꼽힐 만큼 약초로 유명한 땅.

땅심에 이미 치유의 기운이 지펴진 셈이다. 청풍명월의 고장이 건네는 처방전을 따른다면 이런 봄 편지를 띄울 만큼 ‘한 칸 더’ 밝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제천 시민들의 사계절 휴식 공간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다하는 의림지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제천 시민들의 사계절 휴식 공간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다하는 의림지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숲 속의 오솔길을 지나 내륙의 바다로
춘천(春川)이나 홍천(洪川), 화천(華川)이 그렇듯, 지명에 ‘내 천(川)’자가 들어가는 땅은 큰 강이나 호수를 끼고 있다. 제천(堤川) 역시 이름값 하는 물의 고장이다. ‘내륙의 바다’라 불리는 청풍호와 제천 10경 중 1경에 해당하는 의림지가 그것.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다. 축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시초라 전해진다. 영호정과 경호루, 수백 년 수령의 소나무와 수양버들이 운치를 자아내고 저수지 위를 떠다니는 오리배가 아기자기한 맛을 더한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명승지에 정겨운 유원지의 기능까지 두루 갖췄다.

걷기 좋은 길로 소문난 ‘청풍호 자드락길’은 청풍호를 둘러싼 산간 마을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자드락자드락, 입 안에서 알사탕 굴리는 소리를 닮은 이 어여쁜 이름은 ‘나지막한 산기슭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일컫는 말이다. ‘작은동산길’부터 ‘약초길’까지 각각의 개성과 특장점을 지닌 7개 코스는 어느 길을 선택해도 걷는 맛이 쏠쏠하다.

금봉과 박달의 전설을 기리는 조형물. 박달재 공원에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비와 함께 서 있다.

금봉과 박달의 전설을 기리는 조형물. 박달재 공원에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비와 함께 서 있다.

옥순봉쉼터에서 시작하는 6코스 ‘괴곡성벽길’은 괴곡리와 다불리를 지나 지곡리 고수골에 이르는 9.9km의 산책길로 경관 조망이 뛰어난 코스다. 자연 그대로 보존된 산길엔 부처손, 벌개미취, 꿩의다리, 둥굴레 등 약초로 쓰이는 다양한 식물군이 자생한다. 산길 어디에도 돌로 쌓아 만든 성벽이 없건만 이곳이 괴곡성벽길이라 불리는 이유는 비탈진 경사면이 성벽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괴곡’은 ‘느티나무가 많은 골짜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한숨 돌리고 싶을 즈음 도착하는 전망대에선 청풍호와 옥순봉, 옥순대교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청풍호는 1985년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로 제천과 충주에 걸쳐 있다. 제천에선 청풍호, 충주에선 충주호라 부르는 이 거대한 호수엔 수몰마을의 아픔이 잠겨 있다. 댐 건설로 충주, 제천, 단양 지역의 무수한 마을이 수몰됐는데, 청풍호 속에 잠긴 제천 지역 마을만 5개 면, 61개 리에 달한다. 고향은 멀리 있어도 존재감만으로 안도감을 주는 곳일진대 정든 마을을 다시 볼 수 없는 상실감이란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들다. 수몰마을의 역사와 유물을 모아 조성한 청풍문화재단지는 수몰민의 아픔을 달래는 곳이다. 단지 안에는 보물 제528호 한벽루를 비롯해 53점의 문화재와 1,900여 점의 생활 유물이 전시돼 있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배론성지.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촌이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배론성지.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촌이다.

제천의 명소들을 두루 돌아볼수록 지명의 본래 뜻과는 다른 ‘제천(祭天)’, ‘하늘에 지내는 제사’의 의미가 자꾸만 겹쳐졌다. 솟대 때문이었을 거다. 자드락길을 걸으며 숲 속의 갈림길마다 이정표로 마주친 솟대는 청풍호를 바라보는 전망대에서도 하늘 높이 솟아 있었고, 급기야 수백의 솟대가 수놓아진 능강솟대문화공간으로 ‘제천=솟대’의 이미지를 아로새겼다. 긴 장대 끝에 기러기나 오리 등의 새 모양을 깎아 올린 솟대는 예부터 하늘을 향한 희망과 소망의 언어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메신저였다.

인적이 뜸한 호숫가와 숲 속에서 솟대를 만날 때마다 하늘을 향해 곧추선 날렵한 새의 부리에, 몸통에, 꼬리에, 생각나는 이름들의 안녕을 꺼내 걸었다. 솟대 덕분에 하늘을 실컷 바라볼 수 있었던 것도 제천의 ‘천(川)’ 자를 ‘하늘 천(天)’으로 읽어낸 계기가 됐다.

능강솟대문화공간에선 현대적인 조형물로 재조명한 솟대 작품 수백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능강솟대문화공간에선 현대적인 조형물로 재조명한 솟대 작품 수백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울고 넘는 고갯길을 지나 순례의 길로
‘울고 넘는 박달재’는 제천의 한 고개 이름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킨 일등 공신이다. 박달재 휴게소에 도착하자 아니나 다를까,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임아~”가 흐른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마지막 구절에서 그야말로 툭- 터지는 웅숭깊은 설움의 노래는 꼬리를 물고 반복 재생됐다. 박달재는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잇는 해발 453m의 고갯마루다. 조선시대에는 문경새재와 함께 한양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목이라 과거 보러 가는 선비와 봇짐장수들이 넘나들었다.

고개를 울며 넘는 사연으로는 두 가지 옛이야기가 전해온다. 길이 험하고 산짐승에 도적까지 출몰하는 박달재 너머로 시집을 가면 두 번 다시 친정에 오기 힘들어 재를 넘는 새색시들이 눈물을 쏟았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사무친 그리움이 비극으로 완결되는 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의 전설이다. 조선 중엽, 과거 길에 나선 경상도 선비 박달은 고개 아랫마을에 방을 얻어 하룻밤 묵다가 그 집 딸 금봉과 사랑에 빠진다. 이후 전개되는 양상은 짐작하는 그대로다. 남자는 떠나고 여자는 기다리고, 남자에게선 소식이 없고 그리움은 깊은 병이 된다. 소식을 끊은 남자에게도 사연은 있다. 과거에 낙방해 돌아올 면목이 없었던 것. 이유야 어찌됐든 여자는 벼랑에서 몸을 던지고 남자는 뒤늦게 그 소식을 접한다. 죽은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고갯마루를 헤매던 박달은 벼랑 끝 금봉의 환영을 끌어안으며 연인과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금봉과 박달의 전설은 여러 버전으로 조금씩 변주돼 전해지지만 골자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다.

박달재 일주문 현판은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제작됐다.

박달재 일주문 현판은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제작됐다.

박달재와 이웃한 배론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숨어 살던 교우촌이다. ‘배론’은 이곳의 지형이 배 밑바닥과 같다 해서 붙은 이름. 순교자 황사영이 박해 사실을 기록한 백서를 썼던 토굴과 김대건 신부에 이어 조선의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있으며, 국내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성 요셉 신학교가 세워진 곳이다.

배론성지는 단풍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작은 연못을 둘러싼 홍단풍나무가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붉다. 물오른 신록 속에 만개한 꽃나무처럼 타오르는 홍단풍은 순교자들이 흘린 피를 떠올리게 했다. 순교자 묘지를 참배하고 숲 속으로 난 ‘십자가의 길’과 ‘로사리오의 길’을 걸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진 성자와 그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눈물 앞에서 묵상했다. 죽음도 불사한 신념과 사랑, 희생 앞에 경건해지는 마음은 종교와 무관한 것. 이별의 기억이 쌓인 만큼 기도도 길어져 한참 감았던 눈을 뜨자 화르르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 지역 문화재를 원형대로 이전, 복원해 조성한 청풍문화재단지.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 지역 문화재를 원형대로 이전, 복원해 조성한 청풍문화재단지.

사월의 귀밑머리가 젖어 있다.
밤새 봄비가 다녀가신 모양이다.
연한 초록
잠깐 당신을 생각했다.

떨어지는 꽃잎과 / 새로 나오는 이파리가
비교적 잘 헤어지고 있다.

접이우산 접고 / 정오를 건너가는데
봄비 그친 세상 속으로
라일락 향기가 한 칸 더 밝아진다.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봄 편지’ 중에서)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From/ Web. 출처/Daum Cafe: 한국 네티즌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