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막을 수 없는 병 아냐…
매일 ‘이것’ 하면 40% 이상 예방”
양동원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하루 1시간 운동과 1시간 책읽기만으로도 치매 발병 확률을 40% 낮출 수 있다고 했다. 양 교수가 벽 짚고 발뒤꿈치 올리기와 스쾃, 물병아령 돌리기 등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세 가지 근력 운동을 시연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70대 중반인 김미순(가명) 할머니는 독서가 취미다. 매일 2시간 이상 소설이나 수필을 읽는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우고 성격과 특징을 노트에 정리한다. 멋진 표현을 발견하면 따로 정리하고 암기한다. 책을 읽다가 중간중간 쉬면서 읽은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김 할머니는 얼마 전 또래 친구와 치매안심센터에 갔다. 최근 친구의 기억력이 많이 떨어져 인지기능 검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김 할머니의 친구는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았다. 반면 김 할머니는 집중력, 언어 기능, 공간인지력, 기억력, 전두엽 기능 등 모든 분야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 추가로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했는데, 뇌 위축이나 혈관 손상도 전혀 없었다.
70대 중반인데도 이처럼 모든 인지기능이 정상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양동원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에게 물었다. 양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치매 치료에서 이름이 높다. 작년까지 인지중재치료학회 회장을 맡았고, 올 4월부터는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을 맡는다.
양 교수는 “김 할머니가 평소 독서를 포함해 여러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게 비결”이라며 “치매는 막을 수 없는 질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하루 1시간 운동과 1시간 책읽기만 해도 치매 발병 확률을 40% 이상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 40대 중반부터 치매 예방에 나서야
양동원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가 스쾃을 시연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나이가 들면 깜빡깜빡할 때가 많다. 이럴 때 치매를 걱정하며 병원을 찾는 이들이 꽤 있다. 하지만 아무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 일단 마음을 놓긴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들 중 일부는 치매로 악화할 우려가 있다. 이 단계를 ‘주관적 인지저하’라고 한다. 기억력 감퇴 등의 증세를 본인이 인지하고 걱정하는 단계다.
이 단계를 지나면 증세가 조금 더 심해진다. 같은 말이나 행동을 반복한다. 가족들은 그런 상태를 걱정하지만 정작 본인은 잘 모를 때가 많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상생활이 가능해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다. 이 단계에서 매년 10% 정도가 치매로 악화한다. 이후로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치매를 막으려면 주관적 인지저하 단계에서부터 대비해야 한다. 양 교수는 현재 주관적 인지저하 환자를 대상으로 경도인지장애나 치매로 악화하는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3년째 진행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은 40대 중반부터 뇌에 쌓인다. 이 때문에 치매 대비는 40대 중반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양 교수의 설명이다. 이때부터 운동과 독서, 레저 활동, 식단 조절 등을 꾸준히 하면 치매 발병 확률을 50% 정도 낮출 수 있다
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의 상당수는 치매가 발병한 후에는 별 효과가 없다. 양 교수는 “치매 발병 이전에 미리 대비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 운동, 치매 예방-치료에 최대 효과
양동원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가 벽 짚고 발뒤꿈치 올리기를 시연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운동은 인지기능 개선에 큰 도움을 준다. 양 교수는 “일주일에 3회 이상, 45~60분씩 운동하면 알츠하이머병과 치매를 33% 예방한다. 매일 1만 보만 걸어도 치매를 30%는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운동은 치매 예방뿐 아니라 치매 진단을 받은 후에도 유일하게 치료 효과가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운동을 하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뇌의 혈류가 좋아진다.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 외에도 근력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근육에서 분비되는 ‘아이리신’이란 물질이 뇌의 기능을 개선한다. 이 물질은 뇌로 들어가면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제거하고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며 염증을 억제한다.
양 교수는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근력운동 세 가지를 소개했다. 넘어지지 않도록 벽에 손을 댄 뒤 발 뒤꿈치 들어올리기, 스쾃, ‘물병 아령’ 들기를 각각 10분씩, 총 30분 동안 진행한다. 매일 이렇게만 해도 근력 운동은 충분하단다.
근력 운동을 할 때는 부상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근육이 크게 찢어지면 이후 몸 상태가 급속하게 악화될 수 있다. 스쾃을 할 때도 무리하면서까지 무릎을 굽힐 필요는 없다. 천천히 ‘되는 범위’까지만 무릎을 굽힌다. 이외에 추가로 30분 정도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을 더해 줄 것을 양 교수는 권했다.
● 읽고 생각하면 치매 막는다
독서 활동은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일 때 효과가 있다. 매일 1시간씩 독서 활동만 하더라도 치매 확률은 20% 정도 낮아진다. 독서 활동은 책, 신문, 잡지 등을 읽거나 직접 일기나 글을 쓰는 활동을 뜻한다. 다만 독서 활동은 일단 치매가 발병하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굳이 빠른 속도로 많은 분량을 읽을 필요는 없다. 집중력이 떨어져 1시간의 독서가 어렵다면 10분 혹은 20분 단위로 쪼개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한 페이지를 읽더라도 문맥을 완벽히 이해하고 상상을 하려는 노력이다. 설렁설렁 읽거나 하루 1시간을 채우지 못할 경우 치매 예방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똑같은 내용을 TV나 유튜브 등으로 시청할 때는 치매 예방 효과를 보기 어렵다. 양 교수는 “이런 활동은 ‘수동적 활동’으로 본인이 추론과 판단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인지 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동과 독서 외 치매 예방법은?
운동과 독서 이외의 치매 예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양동원 교수는 ‘지중해식 식단’을 추천했다. 지중해식 식단은 지중해 일대 식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생선을 많이 먹는다. 조리할 때는 올리브유와 같은 식물성 기름을 사용한다. 여기에 소량의 와인을 곁들인다. 양 교수는 “이런 음식들이 뇌 혈류를 돕고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며 항산화 작용을 함으로써 치매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의학적 연구 결과가 여럿 있다”고 말했다.
다만 몸에 좋다고 해서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이 경우 체중 증가와 비만, 운동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 또한 치매 악화의 요소가 된다. 양 교수는 “아무리 몸에 좋아도 과하면 독이 된다”고 말했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게 대화다. 지중해 사람들은 1~2시간 느긋하게 대화하며 식사를 즐긴다. 이 과정에서 두뇌 활동이 활발해진다. 따라서 식단 자체도 중요하지만 충분히 대화하며 식사를 즐기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두뇌 활동을 증가시켜 치매를 막는 방법이 최근 증가하고 있다. 양 교수는 “현재 여러 의료 스타트업이 인지 기능을 향상시키고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치매 예방을 표방하는 애플리케이션이 많지만 아직까지는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하지만 인지 기능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양 교수는 휴대전화 게임 앱을 활용하는 방법도 좋다고 했다. 다만 게임의 종류가 중요하다. 표적을 맞히는 방식의 슈팅 게임보다는 기억력을 활용하고 논리적 구조를 생각하게 하는 게임, 이른바 두뇌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또래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며 즐기는 것도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사회적 활동이 실제로 뇌 기능을 증대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양 교수는 “결국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김상훈 동아일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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