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해고도란 이런 곳을 일컫는 표현이었나 봅니다. 넘실대는 바다가 앞마당에 가득 차고, 뒤란 너머로는 섬 새가 삐중대며 날아가는 곳, 내 발소리에 내가 놀라 뒤돌아 볼 만큼 적막한 그런 곳 말입니다. 전남 신안의 영산도는 그런 섬입니다. 먼먼 섬 흑산도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외딴 섬입니다. 섬의 본질은 척박과 단절, 그리고 고독일 겁니다. 하지만 늘 회색 건물에 갇혀 지내는 도시인들에겐 그마저 낭만의 이미지로 다가서지요. 그러니 이런 곳에서라면 도시인 누구라도 기꺼이 집 둘레에 탱자나무를 두르고(圍籬·위리) 갇혀 지내(安置·안치)려 하지 않을까요. 섬 주민들에겐 대단히 송구스러운 상상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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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가 넙죽 엎드려 물을 마시고 있는 듯한 형상의 영산도 석주대문. 섬 내 손꼽히는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석주 너머 거뭇한 섬은 흑산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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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예리항에 들면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가 이방인을 반긴다. 하지만 그뿐. 아가씨는 없고 바람만 항구를 휩쓴다.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던’ 흑산도 아가씨들은 죄다 어디로 간 걸까.
선착장 오른쪽 초입에 영산도 방면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흑산도에서 영산도까지는 도선을 이용한다. 선착장은 예리항 뒤편에 있다. 예리항 초입에 세워진 이정표와 길바닥에 깔린 안내판을 따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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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 이삭이 패기 시작한 마을 안길. 바로 이맘 때 간재미의 몸맛도 익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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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도의 ‘연관 검색어’나 다름없는 특산물 홍합. 포실하게 오른 속살이 먹음직스럽다. |
뱃길로 10분 남짓, 짙은 해무 너머 그림처럼 떠있던 영산도가 와락 품안으로 안겨든다. 선착장 물빛은 곱디 고운 청잣빛이다. 속이 보일 듯 말 듯 희뿌옇다. 청물이 들 때면, 바닥까지 훤히 보인단다. 선착장 안에 떠있는 배는 겨우 두세 척. 작고 앙증맞은 섬이다.
여인의 고운 이마를 닮은 해안선 너머 집들마다 알록달록한 색채의 옷을 입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벌인 ‘국립공원 명품마을 조성사업’의 결과다. 공단은 지난 2010년 관매도를 시작으로 섬과 산 등 국립공원 안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정주 여건 개선 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였다. 영산도는 그 가운데 여덟 번째 결과물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서부사무소가 ‘휴양’을 콘셉트 삼아 주도적으로 조성사업을 이끌었다.
영산도는 흑산도에 딸린 섬이다. 목포에서 94㎞, 흑산도에선 3.2㎞ 떨어져 있다. 섬의 풍속도는 여느 절해고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최성광(47) 이장에 따르면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를 제외하면 섬 내 막내가 44세’일 정도로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면적은 2.3㎢. 이 작은 섬에 23가구 43명의 주민들이 올망졸망 살아간다. 섬이 작은 만큼 주민 간 결속력은 단단하다. 주말 등 방문객이 늘 때면 영산파출소장이 섬 내 유일한 식당인 ‘부뚜막’에서 직접 음식을 나르기도 한다. 물론 ‘자발적’이다. 큰일 있을 때마다 십시일반 손을 보탰던 우리 옛 습속이 근근이 이어지고 있는 게다.
다소 논란은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영산도야말로 홍어의 고장이라는 주장을 편다. 그 내력은 1363년(고려 공민왕 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왜구의 잦은 출몰로 골머리를 앓던 조정은 약탈 대상이던 흑산도 앞섬 영산도 주민들을 현재의 전남 나주 영산포로 강제 이주시키고 섬을 비워 두는 공도정책을 폈다. 영산도 이주민들이 정착한 곳은 고향의 이름을 따 영산현이 됐고, 그 앞을 흐르는 강의 이름(영산강)까지 차지했다.
영산포 홍어의 전통도 바로 이때부터 시작됐다. 낯선 땅으로 떠밀려 온 영산 주민들은 고향의 맛이 그리워 몰래 흑산도 근해까지 가서 홍어를 잡았다. 하지만 잡힌 홍어는 족히 달포 넘게 걸리는 영산강 뱃길을 따라 올라오면서 푹 삭고 말았다. 어떻게 잡은 홍어인데 그냥 버리랴. ‘썩혀 먹는’ 홍어문화는 이런 뱃사람들의 애환 속에서 별미 음식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이다.
섬은 낙후됐다. 여전히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집들이 적지 않다. 고질적인 식수 문제가 해결된 것도 올해 들어서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마을 뒤 댄볏산(된볕산) 계곡에 집집마다 식수통을 설치해 놓고, 길게 파이프를 연결해 집안으로 끌어다 썼다.
명품섬 조성사업이 진행되면서 섬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집집마다 알록달록한 색채의 겉옷을 입었고, 마을길도 정비됐다. 식당도 하나 생겼고, 번듯한 펜션도 세워졌다. 모두 마을 공동 소유다. 주민끼리 허드렛일을 함께 하고, 소득도 함께 나눈다. 일종의 마을 공동체다.
최 이장은 “흑산도 등에서 영산도를 ‘멍청한 동네’라고 부른다”고 했다. 다이버 등을 고용해 바닷속 홍합 등 해산물을 캐내면 소득이 단박에 상승할 텐데, 그걸 안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는 뜻이다. 한데 영산도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겨울철 2개월, 여름철 3개월 동안은 절대 홍합 채취에 나서지 않는다. 어족자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당연히 수중 작업을 하는 다이버는 입도가 금지된다. 소득 높인다고 바닷속을 속속들이 뒤져 해산물을 캐냈다간 되레 자원고갈의 부메랑을 맞게 된다는 인식에서다.
낚싯배도 섬에 접근할 수 없다. 대다수 섬들이 낚시꾼이 섬에 머물며 뿌리고 가는 돈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는 것에 견줘 이례적이다.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집어제 등을 뿌리는 행위는 바다를 오염시킬 수 있어 철저하게 막고 있다. 다만 입도객들이 하루 먹거리를 위해 잡는 낚시나 갯벌 체험 등은 허용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주민들이 얻는 건 뭘까. 조용하고 깨끗한 ‘휴양섬’의 이미지다. 방문객 수도 제한할 방침이다. 적정선은 대략 40~50명이다.
섬을 돌아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선상 일주를 하거나, 탐방로를 따라 걷는다. 영산도의 해안 절벽은 이웃한 홍도와 비슷하다. 홍갈색의 규암들이 주종을 이루기 때문이다. 대표 아이콘은 ‘석주대문’ 바위다. 코끼리가 길게 코를 뻗고 있는 모습과 닮아 코끼리 바위로도 불린다. 험한 해안 절벽에선 염소들이 살아가고 있다. 집에서 기르다 풀려나 야생화 된 녀석들이다. 간혹 밭작물을 해치는 등 섬 주민들에게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지만, 외지인의 시선으로는 여간 이채롭지 않다.
섬을 돌아볼수록 작은 섬 치고 볼거리가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세 번 맞으면 불로장생한다는 비류폭포, 사람의 얼굴을 닮은 코바위 등 파도와 바람이 조탁한 영산 13경이 걸개그림처럼 매달려 있다.
걸어서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도 있다. 영산 10리길이다. 실제 길이는 3㎞쯤. 채 ‘10리’가 못 된다. 길은 마을 뒤 깃대봉을 거쳐, 댄볏산 옆으로 내려온다. 절해고도의 정상 능선을 따라 걷는다.
영산마을 건너편은 액기미다. 예전엔 사람이 살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액기미까지 옛길이 남아 있다. 다만 외진 데다, 종종 뱀이 출몰하니 마을 사람과 동행하는 게 좋겠다.
검푸른 바다 위 ‘하늘다리’에 펼쳐진 다도해의 비경
영산도를 오가는 길에 비금도와 도초도, 흑산도 등을 지나게 된다. 발걸음하기 쉽지 않은 절해고도인 만큼 오가는 길에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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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색채의 그림으로 칠해진 영산도 내 마을길.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명품섬 조성 사업 결과물이다. |
이름값으로야 단연 흑산도가 앞선다. 흑산도의 자랑은 24㎞에 달하는 해안 일주도로다. 가파르고 구불대는 도로를 달리는 맛이 각별하다. 절벽 따라 길을 낸 480m짜리 ‘하늘다리’, 한반도 모양의 지도바위와 서산머리 칠형제 섬 등 볼거리도 많다.
걷는 길도 조성돼 있다. 흑산도 전망길을 따라 약 7㎞ 구간을 걷는다. 길에서 만나는 다도해 풍경이 일품이다. 상라봉 구간에 있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도 유명하다. 유람선을 타고 섬을 돌아볼 수도 있다. 열목동굴~홍어마을~범마을~칠성동굴~돌고래바위~스님바위~촛대바위~남근석~거북바위 순으로 도는 데 2시간 30분 쯤 걸린다.
비금도와 도초도는 한 묶음이다. 별개의 섬이긴 하나 워낙 가까운 데다, 연륙교로 연결돼 있다. 비금도는 소금의 섬이다. 여름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생겼다는 천일염전에서 희디흰 소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섬 산행만 놓고 보면 흑산도보다는 비금도가 윗길이다. 비금도의 주봉 선왕산(255m)을 오르는데, 검푸른 바다와 집산연봉처럼 도열해 있는 푸른 섬들, 여기에 바둑판 같은 염전과 진회색 갯벌 등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빼어난 풍경을 선사한다. 거리는 5㎞ 남짓. 3시간가량 소요된다.
도초도는 1996년 서남문대교가 완공되면서 비금도와 한 몸이 됐다. 반달처럼 생긴 백사장이 3㎞ 가까이 이어진 시목해수욕장과 거무스름한 절벽이 이채로운 시목리 일대의 해안 절벽지대가 볼 만하다.
영산도까지 가는 길은 멀다. 어지간한 탈 것들은 모두 타야 한다. 한데 소요시간은 예전에 견줘 무척 빨라졌다. KTX와 쾌속선 덕이다. 예컨대 오전 8시 20분 서울 용산역에서 KTX 열차를 타면 낮 12시 무렵 목포역에 도착한다. 목포역에서 목포항 여객선터미널까지는 택시로 5분이면 족하다. 목포항에서 오후 한 시에 출항하는 여객선에 오르면 비금·도초도와 흑산도까지 각각 한 시간 안팎에 닿을 수 있다.
흑산도에선 비교적 일정을 자유롭게 짤 수 있다. 영산도를 오가는 도선이 ‘콜택시’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최성광(010-7330-7335) 이장이나 구정용(010-6660-9781) 명품마을 사무장에게 전화하면 언제든 달려 나온다. 선착장은 흑산항에서 5분 거리에 있다. 도선료는 1인당 편도 5000원이다.
목포항에서 흑산도까지는 동양고속(243-2111)과 남해고속(244-9915~6, 이상 지역번호 061)의 쾌속선이 오간다. 오전 7시 50분과 오후 1시 배는 흑산도를 거쳐 홍도까지 운항하고, 오전 8시 10분과 오후 4시 배는 흑산도까지만 간다.
영산도에 펜션과 식당은 각각 한 곳이다. 펜션은 8평이 5만 5000원, 15평이 11만원이다. 밥값은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다. 생선회와 전복, 거북손, 해삼 등 갯것들을 차려 내는 데 1인당 1만 5000원, 한 가족 기준 6만원 정도 받는다. 죄다 자연산에 현지 특유의 음식들로만 차려지니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찌개류 등은 7000원. 제철 먹거리는 간재미가 첫손꼽힌다. 최 이장은 “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 간재미들이 영산도 일대로 알 낳으러 오는데 이때가 가장 맛있는 시기”라고 전했다.
‘뱃멀미 지수’가 궁금하다면 호남위험기상정보센터 홈페이지(hcis.kma.go.kr)를 방문하면 된다. 파도의 세기, 선박의 항로 등을 토대로 슈퍼컴퓨터가 예측한 목포~홍도 항로(총 115㎞) 등의 뱃멀미 예상 수위를 모두 4단계로 나눠 매일 수차례 발표하고 있다. 각 단계에 적합한 멀미약을 복용할 수 있어 유용하다.
글 사진 신안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