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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쉬 - 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 독일 구경

ccttjj 2021. 7. 29. 06:25

 

 

 

 

가미쉬 - 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 독일 구경

 

가미쉬-파르텐 키르헨은 독일 남단의 오스트리아와 경계인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인구 3만 정도의

작은 마켓타운(market town)이다. 동쪽의 가미쉬(Garmisch)와 서쪽의 파르텐키르헨(Partenkirchen), 인접한 두 마을이

통합하여 길다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1936년에 동계 올림픽을 치룬 도시로 가미쉬에는 아이스스포츠 센타가 있다.

 

- 알프스가 보이는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마을 풍경-

 

** 노후를 편안히 즐기려는 사람들이 이 도시를 찾는다고 한다.

 

-의회 휴게실(?) 막스(Max) -

 

** 어여뿐 아가씨가 창가의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오른편 창문은 진품이고 왼쪽 창문은 벽화이다.

벽화 밑에 간판의 의미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휴게실인지 요양원인지?

 

-상 가-

 

**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된 상가 1층, 쇼 윈도는 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 왼쪽 끝에는 casino 간판도 보인다.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페스티벌(Richard Strauss Festival) 현수막이 걸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벽화가 가려지지 않도록 공중에 매달아 놓는 용의주도함, 상가를 방해하지 않도록

이곳 뿐만 아니라 모든 상가 앞에는 키가 작은 가로수를 심었다.

 

-Buchwieser라는 이름의 상가-

 

** 벽화의 내용은 서민들의 일상생활이지만 종교적 색채가 포함된 것도 있다. 벽화와 주민들의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상가 골목-

 

** 동화 속의 마을 같은 조용하고 소박한 도시지만 상가의 물품은 고급, 고가들이라 한다.

 

-옛날 약방(Die Alte Apotheke)-

 

**마리엔 거리 앞에 약방인데 "옛날 약방" 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상점일것 같다.

 

-마리엔 거리(Marien Strsse)의 상가 건물-

 

-호텔 가르니(Hotel-Garni) -

 

** 현관 입구 벽에 붙어 있는 조그만 간판을 보아야 이 건물이 호텔이라는것을 알 수가 있다.

건물 2층 모서리 장식과 창문 밑에는 호엔촐레른 가家(Haus- Hohenzollern)라는 글귀가 있다.

 

- 성 마틴 가미쉬(St. Martin Garmisch)교회-

 

** 작은 마을의 교회답게 규모는 작고 외모는 소박하지만 내부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화사한 교회 내부-

 

** 1787년(MDCCLXXXVII) 지어진 로코코 양식의 이 아름다운 교구 본당은 보수 중이다.

 

-파이프 올겐-

 

슈타인가덴(Steingaden)

슈타인 가덴은 알프스에서 북쪽으로 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마을이다.

 

-슈타인가덴 가는 길에 교통사고 구경-

 

** 사고와 관련된 차량은 4대의 경차들이었으나 한 대만 좀 심하게 찌그러졌을 뿐 심각한 사고는 아닌것 같았다.

스키드 마크(Skid mark)를 보면 중앙선을 넘은 차가 반대 차로의 차를 스치고 반대 차로에 가서 멈춰있다.

사고 현장을 찍는데 앞에서 통행 재개를 기다리던 뚱둥한 여자 하나가 손가락을 고추 세워 보이며 욕을하고 가 버렸다.

 

-비스 성당(Wieskirche)-

 

**도미니쿠스 침머만(Dominikus Zimmerman)이 건축한 바바리안 로코코 양식의 성당으로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성당의 외부는 단순 소박하나 내부는 화려하다.

 

-제 대-

 

**교회 내부는 마치 예술품 도자기 같은 정교하고 화사한 장식들로 꾸며져 있고

창문은 일반적인 교회와 달리 스테인드 그라스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 채광을 이용하여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성당의 제대-

 

** 제대 주변은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녹색, 붉은색 심지어 보라색의 대리석을 다듬어 장식기둥을 만들어 세웠다.

이 대리석들은 무늬로 보아 동일한 암괴들에서 채석한 가치있는 보석으로 보인다.

 

-채찍을 맞은 예수상-

 

** 제대의 아랫층 감실에는 쇠사슬에 묶여있는 예수상(像)이 모셔져 있다.

이 예수상이 1983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유명한 이 비스 성당(Wieskirche)을 탄생케 한 주인공이다.

"채찍을 맞은 예수"에게 바쳐진 비스성당의 탄생 일화는 이러하다.

1730년 비스마을에 가까운 슈타인가덴(Steingarden)수도원의 두 수도자가 성 금요일 행진을 위해

"채찍을 맞은 예수" 목조 상을 만들었는데 성 금요일 행사가 끝나자 이 목조 상은 한 여관의 다락방에 방치되었다.

 

- 자연 채광을 위한 귀엽고 아름다운 창문들-

 

**잊혀진 목조상은 몇 년이 지난 어느날, 농부의 아내 마리아 로리에 의해 발견되어 그녀의 침실로 옮겨진다.

그리고 1738년 6월 14일, 예수像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비스의 기적"이 일어났다.

소문은 삽시간에 전 유럽의 순례자들을 이 작은 비스 마을로 몰려들게 했고

1740년, 비스마을 언덕에 예수상을 안치한 목조 건물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1746년 7월 10일 새로운 성당의 초석이 놓여졌고 "채찍을 맞은 예수의 순례성당"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천정화-

 

**건축을 맡은 도미니쿠스 침머만의 형이자 프레스코화 화가인 요한 밥티스트 침머만이 그린 천정화는

호화로운 로코코 장식에 둘러싸여 있고 난간이 있는 발코니 장식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천정의 왼편엔 천국의 문, 오른쪽에는 비어있는 왕좌가 보인다.

 

- 왕좌-

 

** 최후에 심판을 하러 오시는 분을 위한 왕좌는 비어있다. 천정 중앙, 태양 아래에는 죽음으로 부터의 승리를 의미하는

십자가를 들고 있는 천사들이 있고 그 아래 무지개 위에는 하느님이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고 있다.

 

-천국의 문-

 

** 천국의 문 위에는 "이제는 시간이 없다"라는 라틴어 비문이 있다는데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천국의 문 문지방 아래에는 쓰러져 있는 시간의神 크로노스가 보인다.

천국의 문 아래에는 천국의 문과 비슷한 모양의 파이프 올갠이 놓여있다.

 

-대리석 기둥 머리 장식-

 

** 정교하고 화려한 두 성인상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성녀상-

 

- 성당 뒷편 목장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

 

** 현재도 비스 마을은 일견하여 성당밖에 보이는 것이 없는 한촌이지만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관광객과 순례객은 연간 1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슈방가우(Schwangau)

중세도시 퓌센(Fu"ssen) 에서 북쪽으로 4 km 떨어진 곳에 슈방가우 숲이 있고

백조가 노니는 아름다운 알프 호수(Alfsee) 곁에는 조용하면서도 관광객으로 활기찬 마을 슈방가우가 있다.

 

- 알프 호수(Alf see)-

 

- 호수에서 노니는 백조(Schwan)한쌍-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

 

**슈방가우 숲 한 자락에, 중세의 성채들이 그렇듯이 뾰죽한 고지 등성이 위에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솟아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 = New Swan Castle)은 "새로운 반석 위에 앉은 백조"라는 뜻이다.

이 성은 중세 기사의 전설에 매료된 바이에른 국왕 루드비히 2세(Ludwig I I)에 의해서 1869년~1886년에 건축되었다.

안내판을 촬영한 위의 사진은 항공촬영이 아니면 찍을 수 없는 사진이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사계(안내판 촬영)-

 

** 이 성을 지은 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 2세(Ludwig I I) 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슈방가우 성(Schloss Hohenschwangau)의 발코니에서 올려다 보이는 곳에 자신이 꿈꾸던 성을 만들고자 했다.

평소에 백조를 좋아했던 그는 백조의 모양을 본 따 순백의 성을 만들기를 원했고

놀랍게도 그의 아이디어는 그대로 실현되었다.

 

-건축 중인 백조의 성(1886년)-

 

** 1868년 부터 짓기 시작한 성은 1886년에 일단 완공되었는데, 그 때 이미 루드비히 2세는 의문사로 죽은 뒤였다.

결국 왕은 17년동안 짓고 102일 밖에 이곳에서 살지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