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一可亭)은 조선 고종 때 통정대주와 군수를 지낸 혜산
경광국(惠山 慶光國)이 1913년 향리로 돌아와서 지은 정자이다.
전자 안에는 경광국이 지은 일가정자서와 절수 일구의 판각이 있었으나
현재는 분실되었으며, 정자 아래 암벽에는 일가정(一可亭)과
경광국(慶光國)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혜산 경광국(惠山 慶光國 1841~1923)은 조선 후기의 관리로
북부도사(北部都事)와 평안북도 화천군수를 역임하였다.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개화파와 친분이 두터웠다.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정변의 관리자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 1894년 풀려난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가
7년만에 귀국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상소를 올려 조약의 부당성을 주장하였고, 을사오적(乙巳五賊)의
매국행위를 논박하였다. 말년에는 고향인 연풍에서 여생을 보냈다.